조랑군의 이야기2010/03/11 00:59






우선 전기포트에 물을 담고 스위치를 눌러놓는다. 평소에 두 종류의, 조금 다른 성향의 콩을 두 종류씩 사놓는데, 그 둘 중 어느 녀석을 마실지 잠시 고민, 애매할 때는 통을 열어 향을 맡아보며 결정하기도 한다. 보통 오전에는 약간 상큼하거나 가벼운 녀석을, 늦은 밤에는 쌉쌀한 느낌이 강한 녀석을 고르곤 하지만, 사실은 그 때 땡기는 것을 고르거나, 혹은 드립하기가 좀 쉬운 녀석을 고르는 경우도 많다. '이러이러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이 직접 들 때도 종종 있지만, 보통은 '커피를 마신다', 정확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라는 욕구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콩을 고른 후, 서버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선은 헹주를 식탁에 펼쳐 놓고 그 위에 서버를 올린다. 그 후 드리퍼를 물에 푹 적셔서 꾸욱 짠 후 서버에 올려 놓는다.

내가 쓰는 글라인더는 자동으로 정확하게 갈리는 전동 글라인더도, 쟈센 같은 고급 글라인더도 아니다. 3년 전 생일 때, 처음 본격적으로 직접 드립을 하기 시작했을 때 친한 후배(thx to 소현!)가 생일 선물로 사 준 묻지마 표 글라인더이다. 아마도 투썸이나 커피빈 같은 곳에서 사지 않았을까. 글라인딩의 정도를 조정하기도 몹시 불편하고, 글라인딩 되는 상태도 상당히 불규칙한 편이기 때문에 몇 번 좋은 것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으나 3년 째 여전히 쓰고 있다. 정확한 글라인딩이 드립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잘 알고 있고 있지만, '네가 한 달에 커피에 쓰는 돈이 얼마냐! 벌써 만 2년 반이면 24개월 할부로 샀어도 할부가 끝났겠다!'라고 얘기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딱히 별 생각 없이 쓰고 있는 걸.

수동 글라인더로 콩을 가는 것은 귀찮다면 귀찮은 일이다. 생각보다 은근히 힘도 좀 들고 시끄럽기도 하다. 늦은 밤에 커피를 마실 때는 방에서 콩을 갈아서 다시 주방으로 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 하지만 그 귀찮음은, 콩을 계량 스푼으로 하나 글라인더에 놓고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가신다. 글라인더를 손으로 꽉 잡고 글라인더 손잡이를 돌릴 때 주방에 가득 퍼지는 콩의 향기는 무척이나 달콤하고 향긋하다. 드드득 드드득 드드드드드드드.

모두 갈리면 그것들을 드리퍼에 조심스레 붓고, 다시 한 스푼을 갈기 시작한다. 한 번 드립할 때 콩의 양은 20~25g, 내 실력에 한 잔 분량만 딱 드립을 하는 것은 여전히 좀 부담스럽다. 또 다시 한 번 드드득 드드득 드드드드드드드.

이제 잠시 기다리면 아까 스위치를 눌러 놓은 전기 포트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린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그 물을 조심스레 드립 주전자에 붓는다. 물론 주전자에 부을 때 조심해서 부을 필요는 없겠지만, 어차피 끓는 물로 바로 드립을 하지는 못하고 조금 식혀야 하니, 마치 와인을 디켄팅하듯 가늘게 옮기면 빠르게 식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천천히, 가늘게 옮겨 담는다. 방금 전까지는 별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마음 정도로 움직였지만 지금부터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괜히 몇 번이나 맡아본 커피향도 다시 한 번 맡아보고 옆에 놓아둔 잔도 건드려보고, 조금 긴장된 분주함의 느낌. 여전히 드립은, 특히 첫 물을 붓는 것은 꽤나 긴장되는 일이다.

...

드립 주전자를 손에 들고 조금씩 주둥이를 기울인다. 약간의 긴장을 머금은 물줄기가 가늘게 떨리며 드리퍼로, 가루가 된 커피 콩 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조금씩 주전자를 돌리기 시작하고, 바짝 말라있던 커피는 물을 머금으며 촉촉하게 젖기 시작한다. 콩의 종류에 따라서 머핀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기도하고, 그냥 젖기만 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물을 머금은 커피는 위로 커피향을 가득 뿜어내고, 아래로는 똑똑똑 또로로로 몇 방울의 물을 떨어뜨린다. 조금 전의 달콤했던 향과는 다른 느낌의 촉촉하고 따뜻한 향을 맡으며 콩이 충분히 물을 머금기를, 내가 흘려 보낼 물에 자신을 활짝 열기를 잠시 기다린다. 무엇이든 그저 섣부르게 덤벼드는 것은 오히려 대상이 나에게 마음을 닫게 하기 더 쉬운 법.

물을 한껏 머금고 다음 물줄기를 기다리는 콩에게 다시 주전자의 주둥이를 기울인다. 여전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아까의 긴장된 떨림보다는 기대와 호기심, 그리고 약간의 자신감이 더 느껴진다. 재미있는 것은, 첫 물에서 한껏 부풀었던 녀석은 오히려 조금 느긋하게 물을 충분히 부어주어야 드리퍼로 물이 차오르며 콩이 잠기기 시작하고, 그냥 가라 앉았던 녀석은 두 번째 물줄기가 닿기 시작하자마자 물이 차오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연애 유희와도 같은 것일까-. 물론 콩의 성질이 어떻고 로스팅한 날짜가 어떻고 하는 식의 정확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작은 '사실들'에서 이런저런 삶의 은유를 읽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일테니, 연애 유희와 같은, 커피 콩과의 줄다리기라고 하는 쪽이 더 즐겁게 느껴진다.

두 번째 부은 물이 커피와의 짧은 만남을 끝내고 서버로 모두 흘러내릴 때 쯤 나의 긴장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두 번째 물에서 커피 맛은 거의 다 추출이 된다'라고 배운 지식 때문일테고, 다른 한편으로는 드립 과정의 긴장보다는 '빨리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기 때문일테다. 커피를 드립하는 과정도 무척이나 행복하지만, 내가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은 역시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게다가 내가 내린 커피를 함께 마시기 위해 나를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기도, 혹은 향이 가득한 잔을 들고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내 방이 있기도 하니 마음이 급해질 수 밖에. 함께 마시는 사람의 만족스러운 표정, 혹은 내 방에 항상 틀어져 있는 음악은 커피 그 자체에 맞먹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보너스이다.

4~5번 정도 물을 붓는 과정이 끝나면 나무 젓가락을 서버에 넣어 커피를 저어주고, 준비된 잔에 커피를 따른다. 기대감에 잠시 잊었던 긴장이 다시 스물스물 생겨난다. '지금 이 녀석, 맛있을까;;'하는 약간의 걱정과 함께. 하지만 어쩌랴, 이미 드립은 모두 했고 맛은 결정된 것을.

기대, 걱정, 긴장 등이 잔뜩 섞여있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커피를 마시기 전에 드립 용구들을 먼저 정리하는 편이다. 융드리퍼는 관리를 잘해줘야 하기 때문!! 이라는 철칙!! 때문이 아니라, 한 모금 맛을 본 후에 정리를 하는 것은 무척 귀찮기 때문. 게다가 드립 직후보다는 아무래도 잠깐 놓아둔 후가 커피 맛이 안정이 되기 때문에, 설거지를 하면서 잠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드리퍼에 있는 콩들을 버리고, 물에 빨아 털어 놓고, 서버를 물로 헹군다. 간단한 정리이지만 커피에 입을 댄 이후에 하는 것은 무척 귀찮은 일이다. 한 모금을 맛 봤으면 두 모금을 마셔야하고, 잔에 담긴 커피를 다 마시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에.

...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커피를 마시는 것.
누군가와 함께하기도 하고, 혼자 마시기도 하고, 음악과 함께하기도 하고, 책과 함께 하기도 하는 그 시간.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사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길어봐야 10분 남짓이고, 마시는 시간도 보통 길어야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커피를 내리고, 마신다'고 짧게 표현해 버릴 수 있는 그 시간.

그 시간이 내게 행복한 것은, 내가 그 시간과 과정을 온전히 즐긴다-라는 단순한 사실 하나에 있다. 포트에서 물이 끓는 소리부터 서버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그라인딩을 할 때의 향부터 마실 때 코 끝에 느껴지는 향까지. 때때로 조금은 귀찮기도 한 그 일련의 과정과 시간은 어쨌든 나에게 행복한 시간이기에 나는 커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마신다면 금상첨화.

'커피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것이 좋다', '~~를 하면서 마시는 것이 좋다' ??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것,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다른 행복을 보태고 싶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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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역 3번 출구,
디오빌 뒷 건물에 있는 커피숍 '에스프레소人'
조용하고 예쁜 분위기가 참 좋다. (안타깝게도 손님이 많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좋기도...;;)

학교 정문에 계실 때부터 친하게 지냈었는데,
어떻게 인연이 닿아 이번에는 결혼 전까지 오전에 일을 도와드리기로 했다.

한 동안 일도 좀 도와드리고, 커피도 얻어 마시고,
커피에 대해서도 좀 더 배우고 이야기도 나눠야겠다.

월수금에는 10시에서 1시 사이에
화목에는 10시에서 2시 사이에 일을 하니 들르셔도 좋아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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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랑군의 이야기2010/03/08 23:59







지하철이 다른 교통수단과 무척이나 다른 점 중 하나는, 지하철 역에 들어가서 열차를 타고, 다시 내려 역 밖으로 나올 때까지, '방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버스, 자전거, 하다못해 비행기를 타더라도 이동을 함에 따라 주변 풍경이 바뀌고, 다른 것들이 보이고, 길의 방향들, 건물의 위치들, 지역의 모습들이 보인다. 길에 가다 보이는 편의점 옆에 야채가게가 있고, 그 옆에는 부동산이, 그리고 그 옆에는 치킨집, 빵집 등등이 보인다. 그리고 앞의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나오고, 우회전을 하면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 나온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내가 보고 느끼고 익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의 경우는 다르다. 지상으로 나와 있는 몇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지하철이 움직이는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그냥 깜깜한 벽이다(요즘은 가끔 그 깜깜한 벽에 광고를 쏘아서 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더라).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방향과 거리의 모습은 단지 '을지로 입구 역 다음은 을지로 3가 역'이라는 노선도로 추상화된 순서일 뿐, 실제로 을지로 입구 역에서 을지로 3가 역이 어느 방향에 있으며, 어느 정도 거리라는 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이동을 지하철로만 하는 나는, 지하철을 타고 무척이나 자주, 많이 가본 곳이라고 하더라도 걸어서 가보거나, 노선도가 아닌 실제 지도로 볼 경우 종종 당황을 하게 된다. 명동-광화문-을지로-종로 이쪽 지역의 경우 다른 많은 서울 시민들처럼 무척이나 많이 다져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길을 걷다보면 종종 '앗, 저게 왜 여기 있지?'하고 마주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4호선을 '한강을 가로질로 강북 강남을 잇는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노선도를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 4호선이 그리고 있는 거대한 S자에 가까운 노선도를 처음 봤을때 마주친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집(동작)에서 사당역을 가는 방향으로는 그 4호선이 암만 길어져도 바다와 마주치려면 남해까지 가야 할텐데, 빙글~돌아서 오이도 바다와 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충'의 방향과 거리, 좀 더 정확히는 걸리는 시간을 알 수는 있다. 명동 역은 분명 동작 역보다는 북쪽에 있고, 7개 역을 지나는 시간 정도가 걸릴 것이다. 그리고 왕십리와 신촌은 동대문운동장(지금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기준으로 반대편으로 2호선을 타야하니 각각의 지역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을 기준으로 비교적 동쪽과 서쪽에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지역들은 여전히 무척이나 추상적으로, '신촌역-노선도 상 오른쪽으로 가는 열차 탑승-어둠의 연속-왕십리역'으로 이어져 있는 공간이 된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신촌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혹은 왕십리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걸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조금 더 인간적인, 조금 더 실제적인 정보들의 실종.

한편으로는 직접적인 다양한 정보들 없이 약간의 추상적인 정보만 가지고 있다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그리고 이동의 과정에서도 지리적인 정보가 추가되지 않는 지하철의 특수성을 대도시적인 삶의 특성과 조금 연결해볼 수 있다. 짐멜은 현대적인 대도시의 삶에서 가장 특징적인 태도 중 하나를 '거리두기'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전통적인 소도시의 삶에 비해 현대적인 삶의 일상은, 마주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정보들과 자극들 또한 너무나 많아진다. 때문에 그러한 자극들에 일일이 반응하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신경쇠약에 걸려버리고 말 것이기에, 인간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자극들에 전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둔다는 것.

'이동'이라는 행위 역시,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활권이 넓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정보들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저쪽으로 몇 달을 걸어가면 바다라는 것이 나온다' 정도만 알고 있었고, 그것은 추상적이라고 하기도 뭣한, 그냥 상상 속의 이야기와 같았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가는 것도 채 하루가 걸리지 않는 이 시대에, 가는 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한다면, 그 정보들이 모두 머리에 들어간다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안그래도 알아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은데 말이다.

이제는 '어디론가 간다'라는 표현보다, '돈을 지불하면 어딘가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어딘가로 가는 과정의 상세함은 점점 생략되고 '비용과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정보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정점에 지하철이 있다(지하의 어두움을 하늘과 구름으로 바꾸면 비행기 역시 비슷하다).

정보의 과잉, 자극의 과잉에 대해 거리두기라는 삶의 태도를 통해 영혼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현대인들은, 한편으로는 추상화된 이동 수단인 지하철을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앞의 글에서 썼듯,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합리적 일상에 대한 편안한 밤의 시간을 보낸다.

앞의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내가 지하철을 타는 이유는 버스를 타면 자꾸 길을 잃어서가 아니다. 영혼의 균형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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