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식객2 – 김치전쟁’을 보았다.
‘식객’ 만화와 영화 덕분에, 그리고 무한도전 덕분에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하더라도, ‘요리’라는 영역은 멀기만 한 미지의 영역이다. 특히 대회의 각 라운드마다 던져지는 ‘화두’는, 조선시대 과거 시험 문제를 내는 듯, 스승이 제자를 시험하듯 던져지는 뜬구름 잡는 단어들이었고, 그러한 문제들을 요리를 통해 풀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마냥 신기하기만 한 일.
‘눈 앞에 보이는 단어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과정, 화두를 통해 요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스스로도 더 이상 가진 희망이 없고 죽어버릴까 싶다던 한 수배자의 삶을 단순한 연명이나 악다구니가 아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진 삶으로 만들어 주는 ‘엄마 밥’ 너머의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
필봉 전수관 호인싸부가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었더랬다.
“나는- 내가 굿치고 있는걸 저~기 멀리서 본 사람이, ‘아, 저 가락에 춤 한 번 추어보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게끔, 그런 굿을 치고 싶어.”라고.
이래저래 7~8년쯤 장구에 손을 댔던 사람으로서, 종종 악기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디서 악기 소리가 들리면, 혹은 누가 악기를 치는 것을 보면 함께 ‘악기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악기를 치고 싶다’ 너머에 있는 ‘춤을 추어보고 싶다’라는 감정, 그 분은 ‘그 너머’를 말씀하셨던 것일까. ‘그 너머’를 느끼게 할 수 있고, ‘그 너머’를 느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굿을 쳐보고 싶다고 하신 말씀이지 싶다.
사실 웬만한 백반집에서 시켜 먹는 밥과 엄마가 차려주신 밥, 재료나 음식 실력, 맛이나 영양만을 놓고 본다면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그럼에도 우리가 종종 ‘집 밥’을 먹고 싶다고 하는 것, ‘엄마 밥’을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은 밥상 그 너머가 우리에게 느껴지기 때문일 터이다.
…
‘고딕, 불멸의 아름다움’은 호인싸부가 치고 싶으시다던 굿과 닮아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재밌다-‘라고 했던 생각이, 어느 순간 “이곳들에 가보고 싶다. 이곳의 성스러움을 체험하고 싶다.”로, “언젠가 이렇게 ‘글 너머’를 보고 싶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로 바뀌어 갔다. 바타유는 아직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고 건축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면서, 단지 ‘고딕’이라는 양식이 뒤랑에게서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이유로 집어 들었던 그 책은 나에게 ‘그 너머’에 대한 울림을 전해 주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어느 만화에 대한 글을 쓴다면 ‘그 만화 작품이 보고 싶어지는 글’을,
건축에 대한 글을 쓴다면 ‘그 건축, 도시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지는 글’을,
어떤 문화 현상에 대한 글을 쓴다면 ‘그 현상, 그 상황에 가보고 싶어지는 글’을,
그런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 글에서 내가, 내 글이 읽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언젠가 사라지고 ‘그 너머’만이 느껴지는 글을.
가락이 사라지고 푸진 춤만이 남아있는 굿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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