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여행을 귀중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던 일종의 내면적 무대장치를 부숴버리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속임수를 써볼 수가 없다 - 사무실과 작업장에서 일하며 보내는 시간들 뒤에 숨어서 가면을 쓰고 지내는 짓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에 대해 우리는 그토록 심하게 불평을 해대지만, 실은 고독의 괴로움으로부터 그토록 확실하게 우리를 방어해주는 것도 그러한 시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주인공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소설들을 쓰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혹은 "아내가 죽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일까지 꾸며야 할 한 무더기의 발송 서류가 잔뜩 남아 있다."

여행은 이 피난처를 우리에게서 빼앗아가고 만 것이다. 우리의 가족 친지와 우리의 언어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우리에게 의지가 되는 모든 것들을 빼앗기고 우리의 가면도 벗겨져버린 채(전차의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릉자. 모든 것이 다 그런 식이다) 우리는 완전히 우리 자신의 표면 위로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 자신의 영혼이 앓고 있음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 하나하나에다가 그 기적적인 가치를 회복시켜주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춤추는 여자, 커튼 뒤로 보이는 테이블 위의 술병 - 이미지 하나하나가 제각기 하나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의 인생이 거기에 요약되는 만큼 삶은 거기에 송두리째 반영되는 것같이 생각된다.


- 카뮈, '안과 겉 - 삶에의 사랑'中 (p. 88~89)




카뮈의 이 아름답고 투명한, 집요하고 집착적인 문장들을 내가 언제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Posted by 조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