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를 특징짓는 만화 장르는 성인극화1와 명랑만화이다. 그 전의 시기에 ‘성인만화’라는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자율’을 빙자한 군사 정권의 검열로 인해 낮은 수준의 창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1968년 ‘선데이 서울’, 1970년 ‘일간스포츠’등의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며 상황이 변화하였다. 기존의 신문, 잡지와는 달리 ‘엔터테인먼트’를 표방하며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개재하고자 했고, 만화방에서 한계에 부딪혀있던 작가들에게 활력을 주었다. 1972년 1월부터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고우영의 ‘임꺽정’, 그리고 후속으로 연재된 ‘수호지’는 유래 없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1972년 초반까지 2만부에 불과했던 일간스포츠의 발행 부수가 1975년에는 30만부로 크게 늘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이후 고우영은 ‘삼국지’, ‘초한지’등을 이어가며 1970년대 일간지 만화 시장의 주역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고우영의 작품들은 주로 우리나라의 전설적 의적이나 중국의 왕권 교체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로, 그의 작품들이 일종의 ‘해학적인 우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강한 검열로 인해 적극적인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해학-웃음에의 머무름이 결코 패배나 회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삶을 유지하게 하는 ‘민중적 세계관’의 일환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편 ‘선데이서울’ 역시 1974년부터 18년 동안 연재한 박수동의 ‘고인돌’ 역시 그 동안 터부시 되었던 ‘성’을 해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큰 인기를 얻었다(박인하, 2005b: 402~403; 박기준, 2009: 122~123).
‘성’이라는 주제에 천착한 작가들 중 독보적인 위치의 작가를 한 명 더 꼽는다면 1974년 ‘주간여성’에 ‘사랑의 낙서’를 연재한 강철수를 들 수 있다. 주로 고전 장편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고우영 등과 달리 강철수는 1970년대 젊은이들의 사랑, 성을 소재로 삼은 단편을 연재하였다. 만화의 연출 기법, 소재 등에서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강철수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만화가 가진 ‘일상성’과 특유의 ‘말장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단편들은 주로 대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1970년대까지 ‘대학생’은 상대적으로 희소한 엘리트로 높이 떠받들어졌고, 대학생들 역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군사 독재와 경제적 궁핍이라는 현실적 상황에서 운신의 폭은 넓지 못했다. 강철수는 이러한 현실을 재빠르게 포착,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염세적인 말장난으로 풀어내었다(정준영, 1994: 103~106). 그가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웃음들은 현실 질서에 대한 전복적인 차원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일상적인 작은 소외들에 대한 독자들 서로간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는 일정 정도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정준영(1994: 107~108)의 비판처럼 냉소를 위해서는 현실과 일정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한데 강철수는 그 거리 확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강철수의 만화가 현실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웃음을 통한 상대화에 머물고자 했다면, 그의 냉소와 웃음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1970년대 문학에서 나타나는 ‘유토피아’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유토피아’의 존재를 도달해야하는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낭만으로 상상할 때 현실의 불만족한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하나의 낭만이 되듯, 일상에 대한 냉소적 웃음은 “공포와 놀이를 벌이고, 그 공포를 조소하는(바흐친, 2004: 151)” 하나의 방법, 일상의 주인이 여전히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박인하(2002: 119~120; 2005b: 399, 405~406)에 의하면 ‘일상’의 문제는 70년대의 다른 한 축이던 ‘명랑만화’ 역시 공유하고 있는 주제이다. 명랑만화는 ‘웃기는’ 만화라기보다는 ‘친근함’과 ‘일상’을 그린 만화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상 속의 친근한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을 명랑하게 그려낸 만화를 ‘명랑 만화’라고 한다. 명랑 만화의 핵심은 ‘명랑한 기분’으로, 웃음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인물들 간의 사건을 다루되 관계나 일상을 파괴하지 않고 ‘빙그레 웃음 짓게’하는 것이 명랑만화의 핵심인 것이다.
1970년대의 명랑만화는 기존의 명랑만화와는 다르게 ‘도시’를 공간적인 배경으로 한다. 전세대의 ‘어린 시절’이 농경 사회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면 1970년대의 어린이들은 산업 사회의 도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어린이가 최초로 문화소비의 주체로서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표현한 1970년대의 명랑만화는, 도시의 초등학생들 중 40% 이상이 매달 잡지를 구독하는 상황에서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이전 세대와는 다른 정체성 형성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길창덕의 명랑만화가 있었다. 길창덕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명랑만화를 그려 독자의 폭이 30년 이상에 이른다. 길창덕의 만화가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웃음을 끌어내며 인기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큰 이유로는 캐릭터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동질감, 주인공들의 실수, 다양한 상황의 반복과 역전 등을 들 수 있다(박인하, 2002: 116~118).
뒤에 그 효과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길창덕 만화에서 간략하고 과장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만화적 표현은 독자들로 하여금 감정 이입을 한층 쉽게 만들었다. 카툰화법의 “탈바가지 효과2”를 잘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3등신의 전신, 각자의 개성보다는 상황과 감정을 풍부하고 직관적으로 전하기 위한 얼굴 표정 등을 통하여 독자들의 감정 이입을 한층 쉽게 끌어낸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실수들과 방심으로 인한 그것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독자들을 웃게 한다. 베르그송(2008: 18~20)의 표현처럼 방심, 특히 방심의 원인과 그로 인한 결과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보일수록 희극적인 효과는 강화되는 것이다.
1970년대 만화계의 위와 같은 흐름은 우리가 앞서 문학, 미술에 대한 분석에서 확인한 시대적인 상상력의 특징들을 유사하게 보여준다. 고우영과 박수동, 강철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성인극화의 흐름은 현실에 대한 우회적 접근과 웃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유토피아적인 꿈을 꿀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물론 앞에서 본 고우영에 대한 비판, 혹은 강철수가 “말장난을 위한 말장난(정준영, 1994: 107)”에 빠져들었다는 비판 등이 존재하지만, 상상력의 풍부함이라는 맥락에서는 조금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강철수의 경우 사회적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인으로 그려지는 주인공들의 냉소적인 언술들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극복의 대상’으로, 혹은 ‘아군과 적군’으로 단순화시켜 바라보는 관점과는 다른 이방인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만화의 페이지를 구성함에 있어서 능동적인 배치를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강철수가 일정한 바둑판 모양의 화면 구성을 고집했던 것 또한 시대와 사회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cf. 박인하, 1997: 127~132). 그리고 한 편으로 이 시기에 큰 흐름이었던 명랑만화는 일상을 ‘명랑한 기분’이 들게 하는 표현과 ‘웃음’을 통해 그림으로써 현실에 대한 낭만적인 관점을 유지시켜 주었다. 종합적 상상력의 형상들인 이방인적 관점과 웃음은 1970년대 만화에서 비교적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다른 상상력들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극화’라는 명칭은 1955년,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철완 아톰’ 등으로 유명한 데츠카 오사무 등의 만화에 분리, 만화에서 웃음을 배제하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중심으로 만화를 끌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극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다쓰미 요시히로에 따르면 극화는, 아동만화의 연장선상에서 청년이나 성인까지 독자로 끌어들인 만화이다. 하지만 이 당시 한국에서 ‘성인 극화’라는 장르를 이끌었던 고우영, 박수동 등은 일본의 극화와는 달리 만담과 재담, 성에 대한 해학, 토속적 언어 등을 사용하며 차별화를 하였다(cf. 박인하, 2005b: 388 각주2, 402~404). [본문으로]
- 단순화된 카툰화법과 사실주의적인 표현의 혼합을 통해 독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하거나 반대로 특정 인물들에 대한 타자화를 유도하는 효과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카툰화법으로 단순하게 표현하고 적대적인 인물은 사실적으로 그린다면, 독자들은 주인공에게 쉽게 감정 이입을 하는 한편 적대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타자라는 감정을 확실하게 줄 수 있다(맥클라우드, 2008a: 49~52). 길창덕 등의 명랑만화의 경우, 등장인물들을 대부분 카툰화법으로 표현하고 공간적 배경에 대해서는 비교적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등장인물들에 대한 독자의 몰입을 높이는 기법을 흔히 사용한다(cf. 박인하, 2002: 13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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